누가 봐도 전형적인 모범 가정이다. 단정한 머리 모양, 잘 다림질 된 양복, 깨끗한 구두, 무엇보다도 반듯한 자세와 예의 바른 말투가 그것을 증명해 준다. 엄마는 커리어 우먼, 아빠는 증권맨, 아들은 전교 1등이다. 그들은 집에서도 연기했다. 서로의 진짜 모습을 모른 채 함께 살았다.
믿음직해서 서로 걱정하지 않았고, 간섭하지 않았다. 하지만 때때로 그런 자기 자신을 참을 수 없었다. 소심한 일탈이 필요했다. 계약이 어그러진 어느 날 아내는 빨간색 끈팬티를 샀다. 상사한테 깨진 남편은 검정색 하이탑 운동화를 장만했다. 성적 때문에 스트레스 받은 아들은 네일 아트 도구를 샀다.
아내는 회사 화장실에서 빨간색 끈 팬티에 금빛 리본 자수를 놓았다. 학창 시절에는 꽤 잘 한다는 소리도 들었던 터라 간만에 솜씨를 냈다. 남편은 지하철 화장실에서 바짓단에 가려지는 하이탑 상단부를 구슬로 장식했다. 소식적에 심심풀이로 구슬 공예를 한 적이 있다. 아들은 학교를 마치고 독방으로 된 독서실 문을 잠그고, 화려한 네일 아트를 한 손으로 수학 문제집을 넘겼다.
세 사람 다 각자 미술에 소질이 있었고, 감춰진 욕망이 있었지만, 아무도 티를 내지 않았고, 집에서조차 편하게 지내지 못했다. 어릴 적부터 엄한 부모 밑에서 진로 선택, 중매 결혼에 이르기까지 정해진 길을 걸어왔기 때문일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