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색을 살피며) 너, 용서하기로 한 거야?
(실소를 머금은 채 똑바로 쳐다보며) 용서? 지금 장난해?
(의아해서) 그럼?
그냥 신경 쓰기 싫어진 거야. 내 시간과 내 열정이 아까워서. 훗, 가해자는 생각도 없는데 피해자가 먼저 용서해줄게 하는 것도 웃기잖아!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재수 없어, 어느 날 갑자기 화가 나더라고. 지가 뭔데 지금까지도 날 괴롭히냐고. 근데, 꼴 보기 싫으니까 생각을 안 해야 하는데, 너무 미우니까 그러니까 자꾸만 생각나잖아. 멀쩡하게 있다가도 갑자기 설움이 북받쳐서... 완전 손해야.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생각해도 시간이 없는데.
(뜸 들이더니) 근데, 진짜 미워하면 닮는다는 말이 맞나 봐. 맨날 화난 얼굴을 보잖아. 그 얼굴을 닮는 거지. 말투도, 표정도, 눈빛도. 나도 모르게. 얼마 전에 좀 안 좋은 일이 있었는데, 글쎄, 내가 똑같이 하더라고. 진짜 진짜 싫었는데. (체념한 듯이) 어릴 때부터 알게 모르게 배우는 거지.
(단호하게) 난 지금도 빨리 없어져버렸으면 좋겠어. 내 눈앞에서 아니 내 머릿속에서 완전히 사라져 줬으면 좋겠어. 그래서 괴로워도 죽을 때까지 가져가야겠지.
(한결 밝은 목소리로) 그래도 무시하기로 하니까 그날부터 한 번도 꿈속엔 안 나타나더라. 진짜 꿈에 나오면 하루 종일 재수가 없었는데. 잘 생각도 안 나고, 억울한 기분도, 마음도 편안해졌어. 신기하지 않아? 진짜 벗어나질 못했는데.
내가 힘들어서. 그래도 좋은 추억도 있었었어. 그러면서 대충 넘어갔는데, 그래서 괜찮은 줄 알았거든. 근데 확실히 용서한 건 아니더라. \가끔은 이래도 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정말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이래도 되는 건가. 뭔가 대화로 풀든 따지든 그때처럼 치고받고 싸우든 제대로 붙어봐야 하는 거 아냐?
눈꺼풀을 닫았다고 해서 사람이 지나가는 걸 못 보는 것도 아니고, 햇빛이 내리쬐리는 걸 못 느끼는 것도 아닌데, 눈만 감으면 완전 딴 세상일 거라고 나 자신을 속이는 것 같은? 솔직히 허무하기도 하고. 이렇게 간단했던 걸 그 오랜 세월 동안 힘들어했었나.
용서는 나 같은 애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난 용서 못해. 아마 죽을 때까지 용서 안 할 거야.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내 앞에서 무릎 꿇고 빌어도 용서 안 할 것 같아. 그냥 지우려고. 다음 생애는 절대 보지 말자. 서로 존재조차도 모르고 살자. 그렇게 (음료를 마신다)
(회의적으로) 그게 지워질까?
어이없게도 당당하더라고. 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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