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정말 직장에서 여자가 꽃인 경우가 많았다. 여자가 있으니까 분위기가 환해진다는 말을 아무런 악의 없이 했다. 그리고 여직원의 호칭은 전부 미스+성으로 시작했다. 남자직원은 아무개 씨라고 부르면서 말이다. 이직한 직장은 전보다 직원이 많았다. 그런데 이상한 관행이 있었다. 아침마다 여직원들이 돌아가면서 책상 위의 컵을 모아서 설거지를 하는 것이었다. 음료는 남녀 상관없이 마시는데 왜 설거지는 여직원만 하는 걸까? 성별과 직급으로 나누기 싫어하던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서 사장님을 찾아갔다.
"각자 자기 컵은 자기가 닦는 걸로 하죠."
글로는 이렇게 썼지만 정중하고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다행히 젊은 사장님은 내 말을 들어주었다. 그때부터 컵을 거둬가서 화장실에서 설거지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 여직원이 입사했다. 그런데 부지런한 이 친구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모든 직원의 컵을 모아서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자기 컵은 자기가 닦는 문화가 거의 정착되는 듯싶었는데, 다시 컵을 닦는 사람이 나타나니까 분위기가 애매해졌다. 남직원은 컵을 닦지 않고 퇴근해도 되는 건가 싶었고, 여직원은 하는 사람만 계속 컵을 닦는 게 눈치가 보여서 불편해졌다. 그래서 상사인 죄로 총대를 메고 여직원을 불러서 말했다.
"우리 회사는 각자 자기 컵은 자기가 닦으니까 안 닦아도 돼."
그런데 지나가는 말로 가볍게 말해서 못 알아들은 건지 여직원은 개의치 않고 계속 컵을 닦았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그간의 사정을 구구절절히 말했다.
"이제 겨우 각자 컵을 닦는 문화가 정착돼 가는데, 자기가 그러면 다시 예전처럼 될까 봐서 그래."
그랬더니,
"제가 성격이 깔끔해서요. 제가 원해서 하는 거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라고 말했다. 말문이 턱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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