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가 존재를 처음 만났을 때 존재가 한 첫 번째 행동은 손목을 탁자 모서리에 기대고, 길고 빛나는 손가락을 하나씩 구부리면서 탁자를 ‘탁, 탁, 탁’ 치는 행동이었다.
존재 그 아름다운 머리를 자르셨군요.
대지 당신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서요.
대지는 ‘어떻게’라는 단어를 말할 때 좀 더 천천히 그리고 힘을 주어 말했다. 대지의 뒤에 양손을 모으고, 온 신경을 곤두세워 방안의 광경을 모니터링하고 있던 대지는 존재가 보스의 머리 모양을 언급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이어 존재는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이어갔다. 그는 방금 전까지 거만하게 앉아있던 의자를 박차고 일어서서 대지를 똑바로 바라 보며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존재 저는 인간과의 평화로운 관계를 원합니다.
대지 당신들이 우리의 파트너라는 뜻입니까?
존재 그건 인간이 어떤 선택하느냐에 따른 것이겠지요.
존재가 돌아서서 그 말을 내뱉을 때 미소지었다는 것을 대지는 몰랐다. 물론, 존재 역시 심장 박동수와 땀 배출 정보만으로 대지의 심리 상태를 가늠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겉으로 보기에 대지의 얼굴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어제까지 거기에 있었던 것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머리카락 한 올도 남아있지 않은 정수리에는 푸른 조명이 내리꽂았다. 이 곳은 흡사 오래된 정신병원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