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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2010년 04월 04일 2024년 04월 27일

그의 똥고집은 도무지 당해낼 수가 없다.
 
편집장    왜? 왜 그러려는 건데?

작가      그냥.

편집장   (답답하다는 듯이) 그냥이 어딨어! 그냥이.

 
묵묵부답이다. 속이 터질 것만 같다.
 
편집장    아니, 왜 멀쩡한 이름을 놔두고 다른 이름을 쓰겠다는 거야?

작가       그냥 그러고 싶어.
 
성의가 없다. 이러려고 그렇게 열심히 마케팅한 게 아니다. 지 이름은 누가 알린 건데!

 
편집장    그러지 말고, 얘기를 들어보자고. 왜 이름을 바꾸겠다는 거야?
작가       (뜸 들이더니) 자유가 없어.
편집장    무슨 말이야?
작가       너무 유명해져서 자유가 없어졌다구.
편집장    미쳤어?
 
저도 모르게 이 말이 입에서 튀어 나왔다. 이 작가, 자존심이 센데 기분 나쁘진 않겠지?
 
편집장    (조금은 수그러들어서는) 무슨 자유가 없어졌는데? 누가? 기자 나부랭이라도 쫓아다니는 거야?
작가       그런 건 아닌데.
편집장    그럼?

작가       귀찮아.
편집장    뭐가?
작가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보는 게.
편집장    그거야 자기가 하도… 요란스럽게 꾸미고 다니잖아. 그러니까 그런 거지.
 
순간 얼굴이 굳어져서는 편집장을 노려보는 작가. 간담이 서늘하다.

 
편집장    시쳇말로 자기 나이가 몇이야? 30대 중반에 머리는 치렁치렁하지 귀걸이는 또. 솔직히 안 쳐다볼 사람이 어딨냐구? 나라도… (눈치를 보며 말끝을 흐린다.) 자기 착각하는 거 아냐? 책 한 권 베스트셀러 됐다고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대학 막 졸업하고 신춘문예로 등단한 어린애도 아니고 뭐가 그렇게 대단해?
 
자존심이 센 사람은 차라리 깔아뭉개는 편이 정신차리는데 도움이 된다. 그렇게 믿고 싶다.
 
작가      (귀찮다는 듯이) 뭐, 나도 알아. 그건 그렇고, 이번 작품은 다른 이름으로 쓰기로 결정했어. ○이 나아? □이 나아? 너무 낭만적인가?

 
낭만은 무슨. 고집불통 홀애비 같으니라구!
 
편집장    그 책 성공시키려고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당신이야 책만 쓰면 다지만 난 여기 저기 사람들 만나러 다니고 술 마시고 속 버리고 그러면서 베스트셀러 만들어놨더니 느닷없이 왜 이름을 바꿔서 출간하겠다는 거야!
 
어쩔 수 없다. 언성이 저절로 높아진다.
 
작가      (외려 차분하고 장난스럽게) 늘 새로운 기분으로 쓸 수 있으니까 좋잖아.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밉상이다. 속을 긇는다.
 
편집장   (비꼬듯이) 새로운 기분은 무슨. 베스트셀러 하나 내는 게 얼마나 힘든 건데!
작가      알아. 알아. 그만 좀 해. 아무튼 난 결정했어.
 
일어나려 한다. 편집장, 급하게 잡으며.
 
편집장    잠깐만. 그러지 말고 잠깐 앉아봐. (억지로 앉히고는) 도대체 왜 그래?
 
말을 안 한다. 3년 동안 책 준비를 하면서 그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건만… 잘못 알아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당췌 저 머리 속에는 무슨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걸까? 차라리 잠깐 다른 얘기로 돌리는 게 낫겠다.

 
편집장    거의 다 쓴 거지? 자기가 안 보여주니까 궁금해서 똥줄이 타.
 
안 웃는다. 편집장은 목이 말라 막걸리를 시원하게 들이켰다. 안주에 손이 가려는데,
 
작가       방정환 선생 알지? 어린이날 만든 분 말야. 그 분이 살아생전에 어린이 잡지를 내려고 하는데 기고하는 사람이 없었대.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가명 수십 개를 만들어서 매번마다 다른 이름을 썼다는 거야. 모든 글에 자기 이름을 쓸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아직도 방정환 선생이 가명으로 쓴 글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가 없데.
편집장   (시큰둥해서) 그래서? (정색하며) 잠깐. 그래서 지금 방정환 선생 흉내를 내겠다는 거야?
작가      (심드렁하게) 그건 아니고. 궁금해서. 유명해졌는데, 새로운 이름으로 작품을 내도 잘 팔릴까 싶어서. 어떻게 생각해?
 
어이가 없다. 자기가 무슨 사회학자나 심리학자라도 되는 줄로 착각하는가보다. 출판 시장에서 작가의 이름은 절대적이다. 소니나 애플이라는 브랜드를 보고 상품을 사듯이 독자들은 작가의 이름을 보고 책을 산다. 그런데 매번 새로운 이름으로 책을 내면 누가 알아주겠는가. 이건 다 같이 망하자는 얘기나 다름 없다.
 
편집장    (애써 침착하게)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베스트셀러 하나 내고 쫑 내려고?
작가      상관 없잖아.

 
아, 저 무심함이란! 전략을 바꾸자.
 
편집장   우리 출판사는 그렇게 여유 있지가 않아. 아니, 우리 나라 출판사 가운데 여유 있는 데라곤 한 군데도 없을 꺼야. 책 한 권 성공했다고 다음 작품이 성공하리라는 보장도 없고. 그래, 쉽게 말하면 이건 도박과 같은 거라구! 100권쯤 내서 내내 적자에 허덕이다가 어쩌나 하나 걸리면 겨우 빚 갚고 다시 시작하는 게 이 바닥이야. 첫 작품부터 성공했다고 너무 얕보지 말란 말이야!
 
다시 입을 다문다. 이 직업을 때려 쳐야지. 창작 좀 한다는 작자들이란 어쩌면 하나같이 이기적이고 자기밖에 모르는지!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한 마디 꺼내든다.
 
작가      난 어차피 유명해지려고 글 쓰는 것도 아니고, 글 써서 떼돈을 벌고 싶은 생각도 없어. 막말로 지금도 충분히 피곤한데, 앞으로 작품 나올 때마다 독자들은 좋아한다는 이름으로 참견하려 들 테고, 내 책은 구경도 못한 작자들이 인터뷰랍시고 몇 시간을 붙들고 앉아서는 겨우 A4 한 장도 안 되는 분량을 제멋대로 갈겨써댈 테지. 벌써 당신만 해도 첫 작품 때는 항상 뒷전이더니만 잘 되고 나니까 꼬박꼬박 챙겨주고 신경 써주는 척 하잖아. 그게 귀찮을 뿐이야.
 
난 목숨 걸고 하는 일인데 이 자식은 한 마디로 귀.찮.단.다. 이 작자가 오늘 완전히 열 받게 하네. 여느 때라면 벌써 화를 내면서 밥상을 엎었거나 멱살을 붙잡았을 것이다. 기가 차다. 그러고 보면 이 작가, 첫 만남부터 예사롭지가 않았다.
 
초짜치고는 당돌하게 교정 외에 자기 글에는 절대 손댈 수 없다면서 책을 낼 정도가 아니라면 냉정하게 말해달라고 했었다. 이건 쓰.레.기.라고 말해도 자기는 상관없다면서 말이다. 그 때 이 사태까지 예견했어야 했던 건데. 책 장사라는 것도 알고 보면 사람 장사다. 좋은 작가를 발굴하고, 글을 잘 쓸 수 있도록 독려해주고, 멋지게 포장해서 대박을 터트리는 것. 그런 모든 과정을 거쳐 가슴 뛰게 하는 작품을 만났을 때의 희열이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이것이 직원들 급여 못 줄까봐 마음 졸이면서도 이 일을 하는 가장 큰 매력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이 치에게는 역부족인 듯 하다.
 
편집장    방정환 선생도 좋고, 유명해지기 싫다 그런 것도 좋아. 하지만 나랑 계약했잖아. 난 당신이랑 계약한 거지 ○이나 □하고 계약한 건 아니라구. 이건 명백한 계약위반이야. 알아?

작가      (건방지게) 이봐, 머리가 나쁜가 본데, 난 내 이름을 계속 쓰겠다는 내용으로 계약한 적이 없어. 나랑 계약한 건 맞지만 내가 무슨 이름으로 책을 내건 그건 당신이 상관할 바가 아니라구!
 
아뿔싸. 설마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무명 작가들은 다들 자기 이름을 알리고 싶어 한다. 벌써 8년이나 운영 중인 아마추어 작가 공모전만 하더라도 제발 이름만이라도 올려달라는 작가가 수두룩하다. 그래서 쉽게 생각한 건 사실이다. 간혹 필명을 원하는 작가들도 있지만 그것 역시 그 이름으로 유명해지겠다는 것이지 매번 필명을 바꾸겠다는 것은 아니다. 책도 상품인 것을. 이 치는 출판 마케팅에서 작가의 이름이 얼마나 중요한지 전혀 개념이 없는 것 같다. 그러니까 이런 얼토당토한 발상이 가능한 거겠지. 하느님, 제발 이 문외한을 설득할 방법을 알려주세요!
 
편집장     우리 이러지 말자. 오늘은 너무 피곤하니까 들어가고 다시 한 번 생각한 다음에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구.

작가        (단호하게) 아니, 다음은 없어. 이 건은 이미 결정된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말이 통하질 않는다. 벽에다 대고 얘기해도 이것보다 답답하지는 않으련만. 이판사판 삼세판이다.
 
편집장    (혀를 차며)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작가       (발끈해서) 뭐?
편집장    액세서리로 온 몸을 치장할 시간에 니 글이나 찬찬히 읽어보라구. 기본적인 맞춤법도 모르면서 진부하기 짝이 없는 묘사에, 도무지 고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황당무계한 스토리라인까지. (포기하는 투로) 그래 뭐, 귀여니도 작가라고 하는 판에 누군들 작가가 못되겠냐 만은.
 
말을 끊고 무심코 막걸리를 입에 갔다 댔다. 베테랑답지 않은 이 몇 마디에 작가와의 신뢰는 깨지고, 다음 달부터 당장 직원들의 월급 걱정을 하게 될 지도 모른다. 어째 아까보다 막걸리 맛이 더욱 씁쓸한 것이 단중에서부터 올라오는 후회 때문일까? 아니면 바닥이 보이는 막걸리의, 성분을  알 수 없는 침전물 때문일까.
 
불현듯 작가가 편집장의 손에 들린 막거리 잔을 빼앗아 겨우 조금 남아 있는 막걸리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목구멍에 쓸어 넣는다. 술은 입에도 못댄다더니. 편집장은 물끄러미 그런 작가를 쳐다 본다.
 
작가       알아. 아니까 그만 하라구. 내가 대단한 작가였으면 여짓껏 요 모양 요 꼴이었겠어요? 예!

 
어울리지 않게시리 웬 경어?
 
작가       그러니까 몸에 맞지 않는 옷이란 말이지! 난 매번 신인작가처럼 용서 받으면서 그렇게 글을 쓰고 싶다구. 얼마나 자유로워! 내 이름값에 짓눌리지 않아도 되고, 내 과거로 나를 평가 받지 않아도 될 텐데. 나도 자유롭고, 내 작품도 자유롭고. 유명해지면 돈 벌기는 더 좋겠죠. 하지만 난 그런 거에 욕심 없다니까. 그냥 평생 글 쓰면서 3류 작가로 남고 싶다구. 세상 사람들이 다 당신처럼 책 써서 돈을 벌고 싶어하는 건 아니라구. 아시겠어요?
 
혀 꼬부라진 소리로 잘도 씨부린다.
 
작가       그러니까 편집장 양반. 나 굶어 죽지 않게만 해달라구요. 그렇게만 해주면 내가 돈 되는 작가 물어다 줄게.
 
호기롭다. 터진 입이라고 잘도 떠든다. 며칠 전 신문에서 보니 중2병이라는 게 있단다. 15살 무렵의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심리적인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나는 남들과 다르다’ 혹은 ‘나는 남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또 정반대로 극단적으로 침울해지기도 한단다. 중2명은 그 무렵에만 발병하고 사라지는가 했더니 나이가 2배수가 넘어도 병을 치유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가 보다. 바로 여기.
 
편집장    (시큰둥하게) 그게 누군데?
작가       (횡설수설하며) 내 친구. 성진이라고. 그 자식은 속물 같아서 당신과 죽이 딱딱 맞을 꺼야.

 
위하는 척 하면서 욕하는 얍삽한 새끼. 이런 종자들은 씨눈부터 알아 보고 상종을 말아야 하는 건데. 술 마시고 떠드는 말은 믿을 수가 없다. 얼굴이 발그레 한 것이 더 이상 이성적인 대화를 이어가기란 불가능해보인다. 그렇다고 이 작자가 술을 깬다고 상황이 좋아질 리도 만무하다. 차라리 이 기회를 이용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편집장    그럼, (잠시 생각하다가) 그래 좋아. 그건 그렇다 치고. 그럼, 약력에 이름을 바꿨다고 쓰고 이전 작품명은 그대로 넣기로 하자. 알았지?
 
내 말을 듣기는 한 건지.
 
작가       우리 곰 같은 편집장님. 막걸리 한 잔 더 하시겠습니까?
 
그것도 해결책이라고 내뱉어 놓고는 술 기운에 안 어울리게 애교질이다. 꼬장이라도 부렸다간 봐라.
 
작가       자, 드세요. 쭉 쭉
 
거부할 새도 없이 막걸리를 입 안으로 밀어 넣는다. 에잇, 이러다간 옷 버리겠다.
 
작가       에휴, 잘 먹네.
 
느닷없이 편집장을 끌어 안는 작가.
 
편집장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징그럽게. 나 먼저 갈 테니까 알아서 가라구. 정신 멀쩡하지? 여기 택시비 두고 간다.
 
막걸리를 조금 마셨을 뿐인데, 술이 깨려는 것인지 밤 기운이 쌀쌀하다. 작가는 집에 잘 갔겠지? 탁자 위에 만 원짜리 두 장을 얹어놓고는 작가가 따라 올 새라 서둘러 도망쳐 나온 술자리. 약력 표기에 대해 확답을 받지 못한 것이 영 찜찜하지만 어차피 술에 취했으니 동의했다고 말하면 그만이다.
 
편집장    어휴, 내가 미쳐.(머리를 박박 긁는다.)
 
생각해보면 나도 저랬던 적이 있었는데. 비록 괴테나 톨스토이가 되겠다는 꿈은 15살에 일찌감치 접었지만 대학 다닐 때부터 북 아트에 빠져 자연스럽게 출판사에 들어가고, 고만고만한 출판사의 편집장을 거쳐 마침내 내 회사도 차렸다. 그렇게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고, 뭐든지 될 것 같은 날들이 지났다. 생각해보면 뚜렷이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없었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 덜 하지만 젊을 때에는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말 한 마디가 있어도 속으로 삼켜버릴 때가 많았다.
 
그는 처음부터 반말이었다. 언뜻 보기에도 나보다 훨씬 어린 것이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래도 작가라는 종족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직업인 만큼 기를 살려줘야 한다는 생각에 나도 별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것도 개성이려니. 저마다 유명해지고 싶어서 생난리인데, 유명해지자마자 다시 무명으로 돌아가겠단다.
 
편집장    (담배를 물며) 진짜 특이한 놈일세.
 
그런데 한편으론 부럽다.

도 이름이 많다. 자아분열되는 나를 보면서 어느 것이 진짜 나인지 궁금하다. 연령대는 30대와 40대인데, 대화 수준은 10대나 20대이다. 언밸런스해. 이건 마치 승진을 거부하는 직장인이나 프로가 되고 싶지 않은 아마추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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